영화를 보고 스릴감(혹은 <만강홍: 사라진 밀서>의 경우 슬랩스틱을 통한 고조)에 흥분했다가, 마지막에 나오는 자막을 보고서, 본국 관객들은 애당초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건 신기한 느낌이다. 물론 영화 제작자들이 의도했던 식으로 꼭 즐기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서울의 봄>과 <만강홍>은 각각 한국과 중국에서 최고 흥행을 거둔 작품이기에 결말을 다 알고 보더라도 분명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서울의 봄>을 긴장감 넘치는 밀리터리 스릴러로 즐겼지만, 20세기 한국사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더라도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대강의 (한국사) 지식조차 모르는 이들을 위해 정리하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17년간의 부패한 재임이 끝난다. 한국군 내 비밀 사조직 하나회의 리더였던 호전적인 장군 전두광(황정민)이 암살 사건 수사를 지휘한다.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는 전두광의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의 방어를 책임지는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으로 이태신(정우성) 장군을 임명하고, 수사가 종결되면 전두광과 그의 동료들을 후방에 배치해 하나회의 힘을 약화시킬 계획을 세운다. 이에 전두광은 정총장이 암살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트집 잡아 날조된 혐의를 씌워 체포하기 위해 부하들을 파견하는데, 이는 신임 대통령 최한규(정동환)의 재가 없이 진행된다. 이태신은 이를 전두광의 권력 장악으로 인식하고, 하나회의 통제를 받지 않는 부대를 동원해 전두광을 체포하려 한다. https://gountickets.com/
위키백과를 조금만 찾아보면 ‘이태신’은 장태완 장군을 주축으로 여러 실존 인물들을 합친 캐릭터이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실제 인물들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김성수 감독과 공동 각본가들은 다른 방식들로 역사를 깔끔하게 정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자막에서 잠시 한눈을 팔면 다음날 있을 (후방 배치) 발표를 막기 위한 타이밍으로 쿠데타 시간을 맞췄다는 사실을 놓칠 수도 있다. 사실은 아주 사소한 일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에 놀라는 순간들이 있다. 김성수 감독은 전두광이 군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좌천되는 것에 대한 울분으로 쿠데타를 실행했다고 암시하는 걸까? 글쎄, 분명하게 표현하진 않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종종 이러한 독재자들은 탁월한 능력보다는 적재적소에 있었고, 병사들을 위험에 빠트리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일종의 비도덕성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라고 강조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다.
배우 황정민은 전두광이 체구는 작지만 큰 목소리를 가진 인물이라는 설정에 따라서, 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에서 자신을 제지하려는 사람에게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하고, 이태신을 비롯해 육사 출신이 아닌 이들에게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거나, 대통령을 면담하는 자리에서도 약해보이는 민간인이 자기에게 거부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피부를 긁적이려는 식의 연기를 펼친다. 이는 언뜻 어리석게 행동 같고, 전두광이 불안정한 인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무대포일지 몰라도 규범을 깨는 것이 막강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만큼 기민한 인물이다. 반면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 장군은 흥미롭게 대조적이다. 그는 신중하고 주저하는 인물이며, 전두광과 그의 패거리들에 대한 혐오감을 완전히 숨기지 못하는 모습에선 유쾌함을, 하나회 일당을 과소평가하는 모습에서 약간의 오만함을 가지고 있다. 정우성은 황정민보다는 활약이 적지만, 그의 연기는 적확하고 조용히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방식이어서, 이태신이 주동인물로, 전두광은 씬스틸러 빌런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각 인물들의 역할은 결국 역사에 따른 갈등의 결과일 텐데, 두 캐릭터 모두 한국 군인들이어서 복장색으로는 쉽게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성수 감독은 정말 잘 연출해낸 셈이다. 비록 김성수 감독이 일부 기믹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지만(영화 속 캐릭터들은 볼 수 없을 텐데도, 때때로 CG로 전투 지도를 해설하여 시대착오적인 평면 스크린처럼 보이게 하는 등), 그와 그의 스태프들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말로 설명하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일들의 느낌을 만들어 내고, 액션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도 사건에 명백한 영향을 끼치는 것들(미국과 북한이 그 모든 병력 이동에 어떻게 반응할지)에 적절하게 반복적, 순간적으로 주의를 집중시킨다. 전투 장면은 잘 연출됐고, 김성수 감독은 21세기의 실시간 통신과 원격 측정 장치를 갖고 있지 못한 (영화 속) 부대들에겐 상황 전달이 잘 안 되지만, 관객들에겐 잘 전달되게끔 깔끔한 트릭을 구사한다. 자동 화기들이 발사되는 가운데 개개인이 행동에 나서는 순간은 특히 위태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신경 써야할 고위 장교 캐릭터들 수가 쌓이고, 전세가 기울었음에도 계속 전투가 진행되는 특정 시점에 가면 관객은 지치게 된다. <나폴레옹>처럼 이 영화는 장군들이 충성심과는 거리가 먼 깡패들이라는 점을 충분히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봄>은 결말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까지도 종종 짜릿하게 하는 사건의 스냅 사진 같은 작품이다.